そのような者たちに、わたしたちは主イエス・キリストに結ばれた者として命じ、勧めます。自分で得たパンを食べるように、落ち着いて仕事をしなさい。(テサロニケ信徒への手紙二 3:12)
★テサロニケ信徒への手紙二 3:6-13の一つのポイント★
「働かざる者、食うべからず」。今日の聖句は、このことわざの根拠として語られることが多いと言います。聖句は、文字通り「言葉」として、人々を深いところから突き動かす「働き」そのものとして受け取る必要がありますが、同時に、それがどのような歴史的状況のなかで語られ、記されたのかに対する考慮を欠くと、自分が生きる時代の色眼鏡で見てしまうという危険を冒すことにもなりかねません。パウロたちが今日のメッセージを教会に属する人々に発したのには理由があります。終末の到来についての誤解から、「怠惰な生活」に甘んじる人々が出始めていたからです。では、「怠惰な生活」とはどういうものを指すのでしょうか。聖書学者によれば、それは、「何をしても無駄」という一種の諦めから、安易な行動に走ることであったといいます。ヘレニズム世界の教会では労働を卑しいものとみなすギリシャ的な価値観もそのような動きを後押ししたと考えられます。パウロたちはそのような姿勢に対して批判したのでしたが、しかし「働きたくない者は食べてはならない」という教えをどう考えればいいでしょう。ここで留意したいのは、「働かざる者」でなくて「働きたくない者」となっていることです。パウロは身を粉にして働いた、それは範を示すためだったと告白しています。旧約聖書の労働観の伝統を反映していると思われるこの教えは、しかし、少し窮屈な感じがしませんか。「自分でパンを得ろ」と言うけれど、働きたくても働けない人はどう考えればいいのか。賃金労働だけが労働なのだろうか。悩みは尽きませんが、この時代の色眼鏡ではなく、イエスご自身の考えと照らし合わせながらともに考えましょう。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3:12)
★데살로니가후서 3:6-13의 포인트★
<일 안하는 자는 먹지 말게 하라>는 말은 세계 어디서나 유통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그 기원은 오늘 성경 말씀이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은 물론 역사서가 아닙니다. 말씀에는 사람들에 작용하여 선한 길로 인도하는 힘이 있습니다. 한편 말씀이 어떤 상황속에서 발하게 되고 기록되었는가에 대한 인식을 못 가질 때 우리는 결과적으로 현대사회 상식을 말씀에 겹쳐버리는 위험을 저지르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오늘 말씀을 발하게 된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종말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규모없이> 행하는 사람들이 생긴 모양입니다. <규모없이> 산다는 것은 성서학자에 의하면 <무엇을 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일종의 체념으로 인하여 타락한 행동을 취하는 자세였다고 합니다. 노동을 천한 것이라 삼고있던 헬레니즘세계 가치관의 영향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러한 자세에 대해서 비판을 했던 것이였습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 말게 하라>는 가르침.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점은 세상에서 유통하는 것 처럼 <일 안하는 자>가 아니라 성경은 <일하기 싫어하는 자>라 한 점입니다. 바울은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했>음은 본을 보이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구약성서의 전통이라고도 할 수 있는 노동관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데 이 노동관은 우리에게 답답한 느낌을 안기지 않을까요?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했습니다마는 하고 싶어도 일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어떤 복음이 될 것일까요? 노동은 임금으로만 정할 수 있는 것일가요? 고민은 끝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을 하고 계셨는가를 참고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에 대해서 함께 생각 해 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