するとイエスは言われた。「どうしてわたしを捜したのですか。わたしが自分の父の家にいるのは当たり前だということを、知らなかったのですか。」しかし、両親にはイエスの言葉の意味が分からなかった。
(ルカによる福音書 2:49-50)
★ルカによる福音書 2:41-52の一つのポイント★
12歳になった「少年イエス」がエルサレムに礼拝に行くエピソードが語られていますが、最も注目したいのは、「捜す」「見つける」という言葉です。これらの言葉は何度も出てきますが、いつも二つの時間が意識されているようです。「少年イエス」の時間と「復活のイエス」の時間です。マタイによる福音書でイエスの誕生を祝う博士たちが持ち寄った贈り物になかに「没薬」が含まれていたように、今日の箇所にも、随所にイエスの十字架の死と復活につながる表現が埋め込まれています。たとえば、「少年イエス」の行方を見失ってあわてて「捜す」両親が「三日後」に「見つける」という出来事と、死後、三日後にイエスが復活する事件とが結びついているというように。もう一つ着目したいのは、人間の眼から見た事件の見え方と、神の子の眼から見た事件の見え方の違いです。両親は明らかに子どもを知らず知らずのうちに、置き去りにしてしまったと慌てるわけですが、少年イエスは、自らの意志でとどまっていることの意味を告げます。現代社会でもよく垣間見ることのできる親と子の断絶に通じる構図でもありますが、このことから私たちはどのようなメッセージを汲み取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また今日、エルサレム神殿はありませんが、私たちは、どこにイエスを「捜す」べきでしょ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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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누가복음 2:49−50)
★누가복음 2:41-52의 포인트★
열두살 된 <아이 예수>가 예루살렘에 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의 하나가 <찾다>, <만나다>는 동사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안에 거듭 나옵니다마는 복음서 기자가 늘 두가지 시간을 의식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 예수>의 시간과 <부활의 예수>의 시간입니다. 마태복음을 볼 때 예수님의 성탄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박사들이 가져오던 선물안에 죽음을 상징하는 몰약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 성경말씀에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연결되는 표현들이 많이 묻혀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컨데 <아이 예수>를 찾는 부모가 사흘만에 <만나>게 되는 것과 못박혀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사건이 연결되어 있듯이. 또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본 풍경과 하나님 아들 눈으로 본 사건의 풍경이 틀리다는 점입니다. 부모는 명백히 모르는 사이에 아이를 예루살렘에 그냥 두고 온 것이라고 인식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 예수>는 자신의 의지로 남았고 거기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고하십니다.현대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부모와 자식간의 디스 코뮤니케이션의 구조라고도 볼 수있는 구조이기도 합니다마는 우리가 여기서 어떤 메시지를 읽을 것인가요? 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 없는 오늘날 우리는 어디에 예수님을 찾으면 될 것인가요? 함께 생각해 보십시다.